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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테이블'을 보다가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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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kyoShin 2019. 3. 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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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테이블’을 보다가 울었다

여성 셰프의 테이블



작년 봄, 네 시즌을 이어온 넷플릭스의 아름다운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을 향한 비판이 제기됐다. ‘여성, 그리고 인종 다양성의 부재’. 시즌 4 기준 총 22개의 에피소드 중 여성 셰프를 다룬 편은 고작 5개, 그마저도 백인 여성 위주라는 사실은, 시대가 칭송하는 작품에 걸맞지 않은 것이었다. 비판을 받아들인 제작진은 다음 시즌부터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시즌 절반을 다양한 인종의 여성 셰프 몫으로 구성하고, 서사를 만드는 제작자의 정체성도 유념했다.


지난달 말 공개된 <셰프의 테이블> 시즌 6 속 여성 서사는 변화의 움직임이 정박한 탁월한 결과다. 각각 미국 남부와 인도 델리 출신의 여성 셰프를 조명한 두 에피소드는 전 시즌을 통틀어 손꼽을 정도로 극적인 이야기였고, 덕분에 나는 느긋한 휴일 점심에 눈물을 훔쳤다.




마샤마 베일리 Mashama Bailey


더 그레이 The Grey는 미국 남부 도시 서배너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짐 크로 법* 시대에 흑백 분리 버스 터미널이었다는 장소적 특성을 품고 있다. 불평등의 역사를 딛고 누구나 평등한 이곳에서, 셰프 마샤마 베일리는 남부 음식의 역사를 잇고 가꾼다.


서배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그때를 ‘인생에서 무척 시적이었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이웃집 계단마다 친구들이 있었고, 어울려 서너 시간을 놀다 ‘스릴 Thrill’이라 부르던 아이스바를 먹었다. 저녁 무렵 집에 가면 요리를 사랑하는 할머니가 만드는 음식이 있었고, 그걸 테이블에 둘러 앉아 먹었다.


그 기억은 훗날 마샤마와 남부 음식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었다. 그는 남부의 싱싱한 재료를 요리하고,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면 스릴을 내간다. 서배너가 왜 특별한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역사의 한 갈래를 접시에 담는다.


*1876~1965년 미국 남부 11개 주에서 시행된 인종차별법



 


아스마 칸 Asma Kahn


아스마 칸은 어린시절 히말라야 산기슭을 달리는 다르질링 익스프레스를 타던 때를 기억한다. 콜카타의 더위와 습기로부터 벗어나 시원한 공기를 맞으면, 그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자신의 이름을 외쳤다. 그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울려퍼졌다.


인도에서 절대 환영받지 못하는 둘째 딸로 태어난 아스마는 둘도 없는 말괄량이로 자랐다. 그 덕에 결혼 상대를 쉽게 찾을 수 없었고, 부모님은 그를 대학에 보냈다. 그는 자신을 존중해주는 학자를 만나 런던에 정착해 박사 학위까지 땄지만, 낯선 땅에서 공허감에 휩싸인다.


그는 고향으로 떠나 가족들에게 집안 요리를 배우며 고유한 리듬에 빠졌고, 런던으로 돌아와 가정부로 일하던 남아시아 여성들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고 함께 요리했다. 타국의 이방인과의 연대는 그들을 마치 자매 같은 관계로 엮어주었다. 그들은 모두 한 팀이 되어, 셰프 아스마의 ’다르질링 익스프레스 Darjeeling Express’에서 진짜 프로 셰프들처럼 일하고 있다.


‘더 잘 해내고 싶은’ 아스마는 인도 둘째 딸들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자선 단체를 설립했다. 맛있는 음식과 불꽃놀이를 지원해 파티를 연다. 그는 굳게 믿는다. 다른 여성이 지지해 줄 때 여성들은 변할 수 있다고.



나는 만약 이 두 이야기가 여성 감독의 손을 거치지 않았다면, 점심을 눈물로 적시는 일 또한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각 서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여성을 온전한 개인으로 존재하게 한다. 마샤마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을 의식할 틈을 만들지 않는다. 반면 아스마의 이야기는 바로 그 점을 발단으로 삼되, 서사의 당위와 관련 없는 것*은 조금도 언급하지 않는다.


아비게일 풀러 Abigail Fuller는 마샤마라는 개인의 기억과 인종차별이라는 사회적 기억, 그리고 미국 남부라는 장소를 유려하게 엮는다. 따사로운 볕 아래 스릴을 먹는 아이들로 대표되는 마샤마의 어린 시절 기억은 서사를 아름답게 하는 큰 요소다.


지아 만드비왈라 Zia Mandviwalla가 감독한 아스마의 이야기는 보다 적극적인 여성 서사의 면모를 띤다. 그간 단편 영화와 광고 작업을 통해 여성의 유대를 그려온 지아와 여성 간 연대로 성취를 만든 아스마의 조합은 어떤 여성도 고립되지 않고, 고립되지 않을 세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아스마 칸의 인터뷰에 “남아시아 출신인 지아 감독과 함께한 것은 이 에피소드를 만드는 핵심이었으며, 그는 이 일에 크게 중요치 않은, 남편이나 결혼에 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다.



최근 국내외를 막론하고, 남성이 만든 여성 서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비판을 받는 남성의 시선에는 하나같이 여성을 소모적인 존재로 내몰고 마는 욕망이 담겨있다. <셰프의 테이블>은 여성의 시선이 여성을 향할 때 강한 힘을 지닌 서사가 탄생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말하지 않아도 모든 걸 이해하는 시선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강하게 흔드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덧붙여 이 글을 읽은 당신에게 시간이 좀 더 있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지아 감독의 단편 영화 ‘이팅 소시지’를 보기를 권한다.

[FILMS — ZIA MANDVIWALLA]



기사 참조

How Do We Fix Food TV’s Diversity Problem? - Eater

Netflix ‘Chef’s Table’ Star Asma Khan Explores Identity on Her Terms - Eater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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