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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울 서울 - 35

Diary/서울 서울 서울

by TokyoShin 2015. 12. 1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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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할 말 있어?"

 "아니."

 "그럼 나 갈게."


헤어진 지점은 마침 합정역 6번 출구 앞이었다. 나는 곧장 그리로 들어가 광화문역으로 향했다. 일민 미술관에서 <평면 탐구> 전시를 볼 요량이었다. 시간이 맞으면 스폰지 하우스에서 <이터널 선샤인>도 봐야지. 좀 우습고 어이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게. 버거울까봐 꾹꾹 눌러놓은 마음만 민망게 남았다. '이럴 필요까지 없었네', 틈 없이 납작해진 마음을 부풀리며 블러의 쏭투를 들었다. 춤을 추고 싶을 만큼 신이 났다. 좀 우습고 어이가 없게도.


 광화문역 5번 출구로 나와 일민 미술관에 갔다. 제법 조용한 수요일 낮이었다. 표를 사서 1층 전시실에 들어서니 남자 둘이 작품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2층 윤향로, 곽이브, 그리고 3층 차승언 작가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로비로 내려와 거기 놓인 책들을 살펴보았다. <아수라장의 모더니티>를 살까 하다 교보문고에서 책 구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관두었다. 바로 옆 카페 이마의 함박 스테이크와 와플이 그리도 맛있다는데 가 볼까 하다 카페 입구에서 새어나오는 시끌벅적한 소음을 듣고는 관두었다. 일민을 나와 5번 출구로 들어갔다.


 붐비는 서점을 돌아다니다보니 갑갑하고 숨이 막혔다. 이 곳을 나서고 보자는 마음에 출입구를 찾다가 '아니야, <희지의 세계>를 사서 나가자'는 생각이 들어 문학 코너로 갔다. '화제의 시집' 매대에 곱게 누운 시집을 한 권 들고 계산대로 갔다. 만 원을 내고 천 원을 거슬러 받고는 아무렇게나 나왔다. 어디로 가든 스타벅스는 있을 테지. 눈 앞에 디 타워가 보였다. 사진을 한 장 찍어 친구에게 보냈다. "조수용씨의 디 타워." 스타벅스에 들어가 2층에 자리를 잡은 다음 마음을 가다듬고 시집을 펼쳤다. 특별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첫 시부터 너무 마음에 드는 걸.


 시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 김사월의 <접속>과 김사월X김해원의 <비밀>을 계속 들었다. 8시 10분에 상영하는 <이터널 선샤인>을 보러 가기 전에 이마의 함박 스테이크를 먹기로 했다. 6시 30분이 지나서 이마로 갔다. 저녁을 먹으면서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 받다 통화를 했다. '구체적인 행동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라'는 친구의 조언은 꽤 도움이 된 것 같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덴 생각보다 돈이 들지 않을 것'이란 말에는 아직 동의하지 못했다. 7시 40분 쯤이었을까. 산책을 좀 하다 스폰지 하우스에 가기로 했다. 걸으면서도 아까 듣던 두 곡을 계속 들었다. 


 스폰지 하우스에서 영화를 본 게 2년도 더 된 것 같은데 가는 길이 분명하게 기억이 났다. 그러나 목적지에 다다라서 '여기 맞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한 바퀴를 돌았다. 표를 한 장 사고 포스터를 한 장 받았다. 입장하기 직전엔 하이네켄 한 병을 샀다. 공드리 감독을 좋아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스크린으로 본 건 최근작 두 편이 전부였고, 모두 아주 많이 좋진 않았다. 그러니 그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이터널 선샤인>을 영화관에서 보는 일은 꽤 설렜다. 조명이 꺼졌다. 외투를 벗고, 맥주를 홀짝였다. 


 영화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전화가 걸려왔다.

 

 "괜찮냐?"

 "당연하죠. 오늘 역사적인 날이에요. 헤어지고 이터널 선샤인을 봤어요."

 "되게 안 와닿았겠다."

 "맞아요. 아주 판타지던데요."

 "그래, 판타지여."

  

 집에 도착해서 씻고 컴퓨터 앞에 앉아 과제를 하려다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희지의 세계>를 읽다 잠들까 하고 노트와 시집을 챙겨 엎드려 누웠다. 노트에 몇 마디를 적다가 모르는 새 잠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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