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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설전

Thoughts

by TokyoShin 2017. 2. 19.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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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새로 생긴 공간에서 좋아라 춤을 추었다. 실컷 놀다 나온 발코니에선 '오랑오랑 같은 인테리어가 싫네', '섭스탠스 같은 인테리어가 싫네' 설전을 벌였다. 나는 오랑오랑이 싫은 쪽이라 '자연스러움'을 무기로 한 다 뜯어진 벽은 사실 빈티가 난다고 말했다. 상대는 섭스탠스가 마치 디 뮤지엄 같아서 싫다고 했고 우리는 서로의 견해를 조금도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명백히 취향의 문제겠으나 곱씹자니 상대의 '싫은 이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듣고 싶다. 디 뮤지엄이야 나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최근 오픈한 'YOUTH - 청춘의 열병, 그 못다 한 이야기' 전시는 타이틀만 보고도 도리질을 쳤다. '청춘', '열병' 따위의 워딩이 그저 싫음은 물론이고 '유스' 코드가 각광받은 게 언제인데 굳이 또 2017년에 그걸 가지고 장사를 하나 싶어서. 웹과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전시 사진은 더 끔찍했다. 1세계 청춘의 서브컬처 이미지를 잔뜩 끌어모은 다음 '니새끼 니나 이쁘지', '시발놈 착한 척 하기는' 같은 문장을 얹은 모습이라니. 맥락은 인지해도 그 꼴이 영 아름답지 않고 엉성하기만 한 건, 게으른 주제 아래 '청춘의 스테레오 타입'을 대강 조합해 놓은 전시기 때문일 것이다. 섭스탠스 인테리어 논쟁의 요점이 되는 전시인 개관 특별전 'SPATIAL ILLUMINATION - 9 LIGHTS IN 9 ROOMS'가 싫었던 이유는 좀 다르다. 지금 생각해보니 관람하지도 않은 그 전시 자체가 싫었노라 말하기도 애매한 것 같다. 너도나도 그 전시의 'RGB 룸'에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대는 게 지겨웠기 때문이다. 어떤 집단의 관심이 특정 공간으로 쏠려, 거기 들러 '인증샷'을 찍어 올림으로써 자신의 무언가 - '힙력' 쯤을 상정하는데 적절한 것인지 헷갈린다 - 를 증명하는 현상이 유쾌하지 않았다. 전시 당시가 '힙스터'는 결국 유행을 좇는 집단이 아니냐는 비판으로 가득하던 때기도 했다. 만약 상대가 그 전시를 싫어하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라면, 섭스탠스가 싫은 데 대한 설명을 더욱 듣고 싶다. 그저 어떤 집단에게 각광받던 공간을 재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것이 있는지. 


내가 오랑오랑과 섭스탠스 중에 단연 섭스탠스가 좋다고 여기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완성도에 있다. 오랑오랑에 머물면서 그리 안락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오래도록 방치된 흔적이 남은 벽면을 보면서는 좀 음산한 기분이 들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높고 좁은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를 마시면서는 연신 불안했다. 좋다는 옥상의 풍경은 갑갑하고 빈곤했다. 조도나 엷게 깔린 음악은 좋았지만 그게 공간 전반에 깔린 불안정함을 뛰어넘을 리가 없다. 반면 섭스탠스에서는 적어도 조형적으로 불안함을 느낄 일이 없다. 오히려 2차원, 3차원적으로 예쁜 것들로 가득하다. 어제 오픈한 경리단점에는 색색의 아크릴판으로 만든 가구와 장식물이 있었다. 뭐, 이를 예뻐라하는 게 취향 문제겠지만서도. 이차적인 이유는 유행이다. 얼핏 보면 대놓고 인위적인 섭스탠스가 유행에 편승한 것 같지만 굳이 따지자면 반대 아닌가. 오랑오랑이 유행을 노렸든 아니든 오랑오랑 같은 인테리어는 심심찮게 봤다. 그러니 넘치던 RGB 룸 인증샷의 끝물에 이런 공간을, 망원동 컴컴한 골목 어귀 지하에 연 섭스탠스가 훨씬 멋있다. 게다가 경리단점은 어제 열었는 걸. 뭐, 어디까지나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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