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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낭만,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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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kyoShin 2018. 2. 25.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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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아날로그, 낭만, 감성 같은 낱말을 보면 속이 갑갑해진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원인을 다음의 문장과 엮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시점에서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더 이상 미래주의의 폐해가 아니라 그 역상에 가까운, 일종의 '과거주의'다. 한때 미래가 모든 것들의 최종 목적지이자 모든 좋은 것들의 거처로서 현재를 빨아들이고 산산조각 냈다면, 이제는 과거가 그 진공청소기 역할을 대신한다. 한편으로 모든 좋은 것들이 과거에 있는데, 그것은 유의미한 기억의 형태로 현재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세피아톤으로 아름답게 보정된 추억으로 현재를 질식시킨다."

- 윤원화,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 2016


앞서 말한 낱말들은 과거와 밀접한 채 그를 관습적으로 미화하며 자주 쓰인다. 예를 들자면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얹어 음악을 듣거나 손으로 글을 쓰거나 종이를 넘기는 행위 같은 것에 '아날로그의 낭만과 감성이 좋다'는 말이 쉽게 따라 붙는 식이다. 곧이어 딸려오는 이유는 '행위를 하는 데 긴 절차와 시간을 들이는 게 좋다, 혹은 손에 잡히는 물성이 좋다' 정도로 추려진다. 글쎄. 나는 실시간으로 눈 앞의 광경을 사진찍어 올리는 시대에 그런 걸 쉽게 장점으로 간주하는 것은 좀 게으른 태도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게으른 관점은 긴 시간과 번거로움을 '정성'으로 치환하고, 이를 맹목적으로 긍정한다. 전혀 새롭지 않고 질리는 얘기다. 그래서 몇 달 전 "mp3 파일로 음악 트는 거 얼마나 편해요?"라든가 "인쇄매체 너무 좋아하고 디지털은 잘 모른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보면 걱정이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속이 다 시원했다. 거기엔 구구절절한 미화없이, 현시점에 대한 이성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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