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여행기

Thoughts

by TokyoShin 2017. 5. 6. 19:56

본문




 "한남동에 가자." 

별 군말없이, 우리는 한남동에 갔다. 갑작스레 아무 곳으로 향하려던 건 아니었다. 앞으로 5일을 연달아 쉰다는 사실에 들뜬 어제 저녁, 마트에 들러 화이트 와인 한 병을 산 것이 화근이었다. 신사동 와인바에서 석달을 일한 언니가 값에 비해 괜찮다던 것이, 할인해서 고작 6,900원이었다. 이런 날 그것을 사지 않을 이유가 없어 양념된 닭모래집 튀김과 닭안심 한 팩, 올리브 절임 두 병을 함께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올리브 절임과 닭모래집 튀김을 옆에 두고 맥주잔에 와인을 따랐다. 그리고는 두 잔도 채 마시지 않고, 술보다 잠에 먼저 취해버렸다. 눈을 뜬 오전엔 갈증이 났다. 이상하리만치 콜라 생각이 간절했는데, 그런 게 없으니 한참 남은 와인을 꺼내 마셨다. 비로소 잠에 취하지 않고 술에 취한 나는 친구에게 한남동에 가자고 말했다. 그곳에서 딱히 할 일은 없겠으나 포스트 포에틱스에 들러 책과 고양이를 구경하거나 웨이즈 오브 씽에서 커피를 마시며 앉아있으면 좋을 거라 여겼다. 


 상수역에서 만난 우리는 한강진역에 내렸고, 포스트 포에틱스의 닫힌 문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 웨이즈 오브 씽으로 갔다. 안쪽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여, 파레트를 쌓아올린 다음 러그를 깔아 둔 바깥 자리에 앉았다. 각자의 음료를 주문하고 '돈패닉'을 집어 와서는 속에 든 스티커를 아무렇게나 늘어놓은 채 마음에 드는 걸 꼽아보며 한참을 웃었다. 맞은 편 골목에는 아보카도 버거를 먹으려는 사람들이 언제까지고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저렇게 기다려서 먹을 일이니."

 "그러게."

우리는 어디에서 기다리지 않고 괜찮은 저녁을 먹을 수 있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쉽게 나올 답은 아니어서 주제는 다른 것으로 넘어갔다.

 "연휴 동안 매일 여행기를 한 편씩 쓸까 해."

내가 말했다.

 "여행기? 여행이면 낯선 곳에 가야하는 거 아냐?"

 "그런가? 내일은 좀 낯선 데로 가긴 할 거야. 그런데 여행기를 어떻게 쓰는지 잊어버렸어."

친구는 곧장 여행기의 조건에 대해 검색해 주었다.

 "여행을 가게 된 동기, 출발할 때의 느낌, 감상과 견문,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이야기, 돌아올 때의 희망 등에 대해 쓴대. 시제는 현재형이 좋고."

 "돌아올 때의 희망이라니 웃기다."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남는 희망이 있나. 일상으로 돌아가야한다는 절망이 큰 법 아닌가.' 뭐 이런 시덥잖은 생각을 하면서, 연휴 동안의 여행기를 어떻게 써야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안쪽 큰 테이블에 자리가 나서 그곳으로 옮겼다. 파레트 자리가 나쁘다고 말 할 순 없겠으나 엉덩이가 아팠다. 구석 콘센트에 충전기와 휴대폰을 꽂아놓고 의자에 앉아 멍하게 있다가, 어제의 짧은 생각에 대해 이야기했다.

 "저번에 말했던 영화 '시인의 사랑' 포스터에 적힌 글귀 말이야. '사랑이란, 하나 남은 군만두를 양보하는 것.' 나는 이게 정말 별론데, 왜 사람들은 이런 걸 좋아하게 되는 걸까? 나는 하나 남은 군만두를 양보하기보다 군만두를 한 접시 더 시켜주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저 문장이 감정적으로 더 와 닿긴 하는 것 같단 말이야. 대체 왜 그렇지? 왜 빈곤한 문장에 값을 더 쳐주게 되는 것일까?"

 "난 군만두를 안 좋아해."

 "그럼 교자만두는? 교자만두라고 쳐 봐. '사랑이란, 하나 남은 교자만두를 양보하는 것'이라는 문장이, '사랑이란, 교자만두가 하나 남았을 때 한 접시 더 시켜주는 것' 보다 더 시적이잖아. 심지어 '교자만두' 보다 '군만두'라고 말하는 게 더 시적이고."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뾰족한 답을 내리지 못하였으나, 교자만두에 비해 군만두가 갖는 보편성, 그러니까 결국 사람들의 빈곤이라는 보편성이 원인일 거라고 대강 짐작을 하고 말았다.

 



'Though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질과 기억  (0) 2018.02.27
아날로그, 낭만, 감성  (0) 2018.02.25
취향 설전  (0) 2017.02.19
쇼디치  (0) 2017.01.24
어느새  (0) 2017.01.15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