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택시와 거리를 두고 살던 내가 택시 친화적 삶을 살게 되기까지의 기록이다.
재작년 4월부터 9월까지,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해운대 바닷가에 살면서 돈을 모았다. 한 주에 5일 정도 영화관과 레스토랑이 함께 있는 매장에서 일했는데, 하루하루가 팍팍하기 그지 없었다. 무엇보다 만나서 수다 떨 친구가 곁에 없다는 게 가장 견디기 힘들어서, 그 해 봄은 가차 없이 외로웠다. 시간이 약인 건지 바닷가에 사람들이 모여들 무렵, 나도 이 곳에서의 삶에 차차 적응했다. 같이 일 하는 친구들과도 친해져 일을 마친 후나 쉬는 날엔 종종 다함께 술을 마시러 갔다. 장소는 일터가 있는 센텀시티나 술집이 그득한 수영이 주를 이뤘다. 덕분에 집에 돌아오는 길엔 늘 택시를 탔다. 택시를 잡아타고는 대부분 "해수욕장 앞이요", 말했고 기사님들은 늘 같은 길을 달려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주었다. 택시가 떠나면 나는 캄캄한 바다를 맴돌다 멀끔한 정신을 하고는 거처로 돌아갔다.
작년 11월 말부터 올 3월 초엔 주말마다 이태원의 한 펍에서 일을 했다. 일이 새벽 3시에 끝났기 때문에, 집으로 가려면 택시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일을 시작한 첫날, 새하얘진 정신은 기댈 곳이 없는데 긴긴 도로에 '빈차' 찍힌 택시 하나 없었다. 겨우 멈춰선 택시에 아무렇게나 몸을 태우자, 택시는 강변북로를 쌩쌩 달렸다. 같은 사태가 여러 번 반복되었고 나는 이 곳을 '헬태원'이라 불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연말이 지나서는 택시를 잡는 일이 쉬워졌고 내 정신도 주말의 패턴에 적응을 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두어달 더, 주말 15분 가량을 택시에서 보내곤 했다.
2주 전엔 작은 잡지 팀의 어시스턴트가 되었다. 촬영이 한창인 때라 일을 시작하자마자 여기서 저기로 바삐 다녀야 했다. 쇼핑백과 함께 택시를 타고 논현동, 신사동, 청담동, 압구정동으로 향했다. 이 동네 지리에 젬병인 나는 어느 방향에서 택시를 잡아야 할지 몰라 때마다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켰고, 목적지 설명이 힘들어 기사님들께 '네비에 주소를 찍고' 가길 요청했다. 하루는 네비가 고장난 택시를 탔다가 방향을 찾지 못하고 중간에 내리기도 했다. 아마 다음 달에도 그 다음 달에도 일주일 간은 택시를 탈 텐데, 그 때 쯤엔 목적지를 척척 말하는 '프로 라이더'가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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