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밤엔 재밌는 일이 있었다.
전 날 잠을 많이 못 자서 일을 마치고 무진장 피곤했는데, 그렇다고 곧장 집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 바다에 갔다.
이어폰을 꽂고 바다로 향하다보니 잠이 확 깼다.
그러나 슬프게도, 바다에 가고보니 또 피곤했다.
도착하자마자 마주친, 스피커에서 시끄럽게 울려퍼지는 노랫 소리는 정말이지 날벼락이었다.
나는 갑자기 확 지쳐서, 요즘 통 안 보이던 고양이가 오늘은 나타났는지만 확인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걔가 늘 있던 자리는 그 날도 텅 비어있었다.
그래 가야지, 돌아가려다 그냥 걸었다.
저 쪽 끝에서 외로이 불꽃이 터지기에 그걸 보면서 조월의 불꽃놀이를 들었다.
잠시 멍하니 있다 아주 천천히, 왔던 길을 다시 밟았다.
그리고 그 길에서, 가만히 생각에 잠긴 듯한 사람을 보았다.
계단에 앉은 그 사람 왼쪽에는 맥주 한 캔이 놓여 있었고, 오른쪽엔 직사각형 서류가방이 눞혀져 있었다.
곱슬거리는 금발에 안경을 끼고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은 그 사람은 줄곧 바다를 바라보다 이따금 휴대폰을 꺼내 보기도 했다.
나는 멀찍이 그 사람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애꿎은 노트에 애꿎은 글을 썼다.
이상하게 옆에 가서 말을 걸어보고만 싶었다.
마침내 나는 이미 그 사람 옆에 서 있었으므로, 말을 걸 수 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앉아도 될까요?"
"네."
"어디서 왔어요?"
"영국."
"와, 정말요? 나 이번 10월에 영국에 가요."
"그래요? 뭐 하러요?"
"여행이요."
"어디 어디 갈 거예요?"
"런던이랑 글래스고, 그리고 음 에딘버러?"
"나 글래스고 출신이에요."
"와."
"글래스고는 여행하긴 별로일 걸요. 거긴 별 게 없는데."
"그런가요? 런던에 있는 내 친구가 글래스고로 여행갔는데 좋았다던데요. 난 음 어 그러니까,"
"한국말로 해도 돼요. 난 여기서 5년 살아서 한국말 괜찮아요. 여기는 한국이잖아요."
"영화 트레인스포팅을, 글래스고에서 촬영했다그래서 가고 싶어요."
"트레인스포팅? 난 그게 좋은 영화라고 생각 안 해요."
"그래요? 왜요?"
(이 대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여기에 살아요?"
"네."
"어디요? 마린시티?"
"아뇨, 그냥 여기 근처요."
"무슨 일 하고 지내요?
"파트 타임 잡. 레스토랑이요. 학교는 쉬고 있어요. 영국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거든요."
"아, 알바."
"네, 하하."
"거의 매일요"
"난 한 달에 몇 번 오는 거 같아요."
"왜 부산에 있어요? 한국엔 어떻게 왔어요?"
"그냥 잘 모르는 나라에 가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여기 왔어요.
부산 오기 전에 압구정에 있는 학원에서 일했는데, 그 땐 별로 좋지 않았어요.
지금은 여기서 경제학을 가르쳐요."
"와."
"아, 그나저나 이름이 뭐예요?"
"도쿄요."
"난 진짜 이름을 묻고 있어요."
"진짜 도쿄예요."
"그럼 성은?"
"신."
"신도쿄?"
"진짜 이름은 동경이에요. 내 이름은 한자로 되어 있는데 일본 수도 도쿄랑 발음이 같거든요."
"난 '동경'이 훨씬 좋은 이름이라 생각해요."
"난 도쿄가 재밌어서 좋아요. 그 쪽 이름은 뭐예요?"
"알리. 알레스토인데, 그냥 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