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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 72

Diary/부산에서

by TokyoShin 2014. 8. 2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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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밤엔 재밌는 일이 있었다.

전 날 잠을 많이 못 자서 일을 마치고 무진장 피곤했는데, 그렇다고 곧장 집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 바다에 갔다.

이어폰을 꽂고 바다로 향하다보니 잠이 확 깼다.

그러나 슬프게도, 바다에 가고보니 또 피곤했다.

도착하자마자 마주친, 스피커에서 시끄럽게 울려퍼지는 노랫 소리는 정말이지 날벼락이었다.

나는 갑자기 확 지쳐서, 요즘 통 안 보이던 고양이가 오늘은 나타났는지만 확인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걔가 늘 있던 자리는 그 날도 텅 비어있었다.

그래 가야지, 돌아가려다 그냥 걸었다.

저 쪽 끝에서 외로이 불꽃이 터지기에 그걸 보면서 조월의 불꽃놀이를 들었다.

잠시 멍하니 있다 아주 천천히, 왔던 길을 다시 밟았다.

그리고 그 길에서, 가만히 생각에 잠긴 듯한 사람을 보았다.

계단에 앉은 그 사람 쪽에는 맥주 한 캔이 놓여 있었고, 오른쪽엔 직사각형 서류가방이 눞혀져 있었다.

곱슬거리는 금발에 안경을 끼고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은 그 사람은 줄곧 바다를 바라보다 이따금 휴대폰을 꺼내 보기도 했다.

나는 멀찍이 그 사람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애꿎은 노트에 애꿎은 글을 썼다.

이상하게 옆에 가서 말을 걸어보고만 싶었다.

마침내 나는 이미 그 사람 옆에 서 있었으므로, 말을 걸 수 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앉아도 될까요?"

"네."

"어디서 왔어요?"

"영국."

"와, 정말요? 나 이번 10월에 영국에 가요."

"그래요? 뭐 하러요?"

"여행이요."

"어디 어디 갈 거예요?"

"런던이랑 글래스고, 그리고 음 에딘버러?"

"나 글래스고 출신이에요."

"와."

"글래스고는 여행하긴 별로일 걸요. 거긴 별 게 없는데."

"그런가요? 런던에 있는 내 친구가 글래스고로 여행갔는데 좋았다던데요. 난 음 어 그러니까,"

"한국말로 해도 돼요. 난 여기서 5년 살아서 한국말 괜찮아요. 여기는 한국이잖아요." 

"영화 트레인스포팅을, 글래스고에서 촬영했다그래서 가고 싶어요."

"트레인스포팅? 난 그게 좋은 영화라고 생각 안 해요."

"그래요? 왜요?"


(이 대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여기에 살아요?"

"네."

"어디요? 마린시티?"

"아뇨, 그냥 여기 근처요."

"무슨 일 하고 지내요?

"파트 타임 잡. 레스토랑이요. 학교는 쉬고 있어요. 영국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거든요."

"아, 알바."

"네, 하하."


"바다엔 얼마나 자주 와요? 한 주에 두 세번? 한 번?"

"거의 매일요"

"난 한 달에 몇 번 오는 거 같아요."


"왜 부산에 있어요? 한국엔 어떻게 왔어요?"

"그냥 잘 모르는 나라에 가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여기 왔어요. 

부산 오기 전에 압구정에 있는 학원에서 일했는데, 그 땐 별로 좋지 않았어요.

지금은 여기서 경제학을 가르쳐요."

"와." 

"일은 할 만 해요?"

"힘들어요, 엄청."

"그래도 끝내고 보면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내가 학원에서 일 했을 때 그랬거든요."

"네."


"아, 그나저나 이름이 뭐예요?"

"도쿄요."

"난 진짜 이름을 묻고 있어요."

"진짜 도쿄예요."

"그럼 성은?"

"신."

"신도쿄?"

"진짜 이름은 동경이에요. 내 이름은 한자로 되어 있는데 일본 수도 도쿄랑 발음이 같거든요."

"난 '동경'이 훨씬 좋은 이름이라 생각해요."

"난 도쿄가 재밌어서 좋아요. 그 쪽 이름은 뭐예요?"

"알리. 알레스토인데, 그냥 알리."


"전공이 뭐예요?"

"애드버타이징."

"광고."

"네, 하하하."

"앞으로 광고 일을 할 거예요?"

"아뇨, 그치만 비슷한 걸 할 거예요."

"비슷한 거 어떤?"

"브랜딩."

"광고도 일종의 브랜딩이죠. 

내 형이 경영학 전공했어요. 마케팅도 배우고.

난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지만.

왜 그걸 하고 싶어요?"

"난 브랜드를 좋아하고, 재밌어요."

"이런, 브랜드를 좋아한다고요? 그럼 당신의 스트롱 브랜드는 뭐예요?"

"음, 아마 모르실 것 같아요. (알 만한 걸 말하자면) 무지요."

"으흠. 난 삼성이나 현대같은 게 나오는 줄 알았어요."

"닥터마틴도 좋아해요."

"으흠. 가고 싶은 회사 있어요?"

"네."

"어딘데요?"

"모를 걸요. 작은 회산데, 플러스엑스라고."

"음. 모르겠네요. 왜 거기에 가고 싶어요?"

"이 회사의 생각이 맘에 들어요."

"그게 뭔데요?"

"음, 영어로 말하기 어렵네요."

"한국말로 해요."

"음, 브랜드 경험 디자인 회산데요, 사람들이, 어떤 브랜드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는 바가,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치만 다들 그러려고 노력하잖아요."  

"네, 그렇죠, 그런데 음, 이 회사의 작업물들이 좋아요."

(나는 좀 당황하고 말았다.)

"흐음. 그래, 언제쯤 거기 갈 수 있겠어요?"

"글쎄요, 하하. 내년? 아마? 그러길 바라요."

"졸업 시험이 언제예요?"

"아마 내년?"

"그렇게 되길 바라요."



"집에 갈 건가요? 난 이제 가야겠어요."

"흐음, 걸어가나요? 나도 저 쪽으로 가야하니까 같이 걸어가요."

"그래요."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뭐예요?"

"음, 글쎄."

"노래? 밴드?"

"모를 걸요. 내가 말하는 이름을 알면 선물을 줄게요."

"진짜죠? 말해 봐요."

(어떤 이름을 말했다.)

"몰라요."

"모과이."

"모과이! 알아요!"

"정말?"

"네, 서울에도 왔었잖아요."

"진짜? 모과이 안다고요? 부산에 있는 사람들 아무도 모르던 걸요."

"진짜 알아요."

"제일 좋아하는 밴드 뭐예요?"

"음. 되게 많은데,"

"거 봐요. 어렵다니까."

"다프트펑크?"

"음. 다프트펑크 좋죠. 나 라이브 봤어요. 나 열일곱 쯤엔 그렇게 유명하진 않았는데, 가장 최근 앨범 내고는 슈퍼스타가 돼 있더라고요."

"맞아요. 아, 다프트펑크 진짜 보고싶어요."



"음, 그리고, 토로이모아?"

"몰라요."

"피닉스?"

몰라요."

"또 뭐 있지, 콜드플레이? 하하하."

"알죠. 난 싫어해요."

"왜요?"

"음, 너무 연예인 행세를 해요."  

"아. 알겠어요. 하하."



"나 실은 이 쪽으로 가요."

"아, 그렇군요."

"네."

"오늘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요."

"네 저도요."

"좋은 금요일 밤 보내요."

"그 쪽도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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