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게 내리던 비가 좀 멎었을 때, 밖으로 나갔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의 신작을 보기 위해서.
지하철을 타고 전포역으로 가던 길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엄마였고,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았냐고 했다.
아닌데, 영문을 모르다 가방을 뒤적였다.
"어? 없어."
"빨리 가 봐라. 해운대역 고객 서비스 센터에 있단다."
당장에 내린 다음 반대 방향 지하철을 탔다.
맘 졸인 끝에 해운대역에서 지갑을 찾았다.
지갑 안에 엄마 카드가 있는데, 역무원 분이 그 카드사에 연락을 했고, 엄마가 그 전화를 받은 거였다.
"감사합니다."
역무원 분들의 수고로움에 비하면 하잘 것 없는 인사였으나, 나는 달려야 했다.
이런 식으로, 지금 이 순간 가장 보고 싶은 영화의 앞부분을 놓칠 수는 없었다.
전포역에 도착하니 일곱시였다.
영화는 일곱시 오분 시작.
광고를 십분 정도 할테니 헤매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직감이 이끄는 대로 달리니 목적지가 나왔다.
급히 티켓을 출력하고 상영관으로 뛰었다.
다행스럽게도, 광고가 한창이었다.
그렇게 자유의 언덕을 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이동진 평론가의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이 감독님을 더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각별히 맘에 들었던 건 모리가 영선에게 '시간'이라는 책을 설명할 때의 대사.
돌아오는 길, '어서 오라'는 언니의 메시지를 뒤로 하고 바다에 갔다.
기억의 릴레이 끝에 허츠를 들으려고 보니 원더월이라는 제목이 있었다.
오아시스의 그 원더월일까? 제목만 같은 건가?
플레이 버튼을 눌렀더니 굉장한 게 쏟아졌다.
그 길로 백사장에 내려가 무한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뭐 이런 순간이 다 있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다음날 아침 출근이니 그냥 자려다, 도무지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이라 기록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