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는 일을 마치고 족구왕을 보았다.
은은한 재미 끝에 상큼한 결말을 맞이하고 보니 기분이 참 좋았다.
밖으로 나오니 걷고 싶어져서 지하철 역을 지나쳐 걸었다.
그러자니 조금만 더 직진하면 나오는 마트에 들러 맥주나 한 병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 코너를 둘러보며 이천원 하는데 예쁘고 낭만있는 비어 창을 살까 하다가 오천백원짜리 롱보드를 샀다.
예전부터 마셔보고 싶었는데 왠지 그제가 날인 것 같았다.
지하철을 탔고 해운대역에서 내려 바다로 갔다.
비지엠은 다프트 펑크로 골랐다.
왼쪽으로 쭉 걷다가 썸띵 어바웃 어스의 전주가 나올 때 맥주랑 병따개를 꺼냈다.
한 모금 들이키니 그만이었다.
눈 앞엔 바다가 있었고 다프트펑크가 흐르는 밤중이었다.
백사장으로 내려가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
비지엠은 데이빗 보위의 히어로즈.
'아, 죽인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음 곡은 너바나의 스멜즈 라이크 틴 스피릿.
나는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었다.
거리낄 것 없이 걷는데 누군가 저기요, 말을 걸었다.
좀 귀엽게 입은 남자애였는데, 바다를 배경으로 친구들과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가로로 찍어요, 세로로 찍어요?"
"아무데나 찍어주세요."
"찍을게요."
"하나 둘 셋 해주시면 안 돼요?"
"하나, 둘, 셋."
"감사합니다."
나는 계속해서 걸었다.
구름 틈에 파란 하늘이 보였다.
분명 한밤중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