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ject : 프레젠테이션 실습
Professor : 박현길
지난주, 대학 생활이 막을 내렸다. 다섯번 째이자 마지막 개인 발표 시간에, 나는 좋아하는 맥주와 시집을 팔았다. 투올의 더블 인디아 윗 에일 <미스터 화이트>와 황인찬 시인의 두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였다. 맥주는 발표 이틀 전에 일하는 펍에서 공수해 왔고, 시집은 그보다 전에 서점에서 사 두었다. 두 물건을 소개하기 전에, 어떤 화두를 꺼내며 이 물건을 사야 하는 이유를 만드는 일이 가장 큰 과제였다. 이전에 막연히 '레이어'라는 콘셉트와 대략적인 맥락을 생각해 두었으나 막상 이를 7분짜리 발표로 풀어내자니 어려웠다. 나는 결국 발표 전날 밤까지 헤매다 이전까지 했던 생각들을 간결히 짜깁기 하게 되었다. 적어도 청중의 호기심은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지난 네 번의 발표 동안 내가 쌓아온 이미지 - 신선하고 확고한 주관을 가진 사람 - 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맥주와 시집을 함께 1만원에 파는 것이 목표였는데, 두 물건을 따로 5천원씩에 판매했다. 맥주보다 시집에 대한 관심을 보인 청중이 많았다는 게 재밌었다. 뜬금없이 내 주량을 묻는 청중도, 이런 물건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서 얻냐고 묻는 청중도, 시집에서 좋았던 구절을 읽어주길 요청하는 청중도 있었다. 가장 좋았던 질문은 "지난 번에 지나 온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하셨는데, 그것도 궁금했었거든요. 어떤 얘길 하려고 하셨는지 조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였는데, 괜찮은 답을 드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팀 형식으로 진행되던 수업이 개인 형식으로 전환되던 때, 각 개인이 선정한 주제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당시 내 발표 주제는 '나'라고 밝히며 "대학교에서의 마지막 수업에서 내가 하고 싶은 내 이야기를 하고 싶고,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여러분이 여전히 나에 대해 궁금해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종강을 맞이하며 이 말이 어느 정도는 유효하게 된 것 같아 기뻤다. 마지막 대학 생활을 이렇게 마무리하게 되어 좋다.
대본
우리는 종종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내보여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그러나 제가 90년대생으로서 느끼는 것의 큰 축은, '세상에 이미 너무 많은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축적됨에 따라, 우리가 소비할 이미지와 텍스트도 늘어만 갔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부터, 세상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이 있었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이 있기 때문에, 온전히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내보이는 일은 점점 힘들어집니다.
지금 이 시대에서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란, '세상에 이미 있는 것들'을 새롭게 조합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여기, 여러분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새로운 조합이 있습니다.
여러분을 생경한 세계로 데려가 줄 맥주와 시집입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조합은 또 각각의 새로운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맥주와 시집 설명)
겨울밤, 맥주를 마시고 시집을 읽으며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꿈꾸고 싶으신 분들은, 지금 제게 질문과 흥정을 걸어와 주세요.
원가 상관없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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