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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kyoShin 2018. 2. 1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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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내가 침대에 엎드려 깨끗한 화이트 와인을 마시는 동안 영운은 책상을 등지고 셀피를 잔뜩 찍고 있었다. 봄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밤이었다. 시작한 적도 없는 사람과 끝날 거라 확신하는 밤이기도 했다. 그를 만난 곳은 지하에 있는 작은 클럽이었다. 나는 구석에 서서 맥주를 마시며 외투를 맡기고 오겠다던 영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붉은 어둠이 공간을 압도하는 가운데 머리는 어지럽고 영운은 한참동안 오지 않았다. "죄송한데 잠시 기대도 돼요?", "네." 그는 별다른 내색없이 어깨를 내어 준 사람이었다. 외투를 그대로 입은 영운이 자리에 돌아왔을 때, 나는 영운의 자초지종 보다는 그가 꺼낼 말이 더 궁금했다.


"너 걔 생각하지?" 어느새 영운이 침대 옆에 와 있었다.

"어."

"야, 진짜 아니라니까. 서로 아닌데 뭐하러 만나?"

"나도 알아."

"그럼 됐어."

"겨울이나 끝났으면 좋겠다."

"나도."


우리는 아무말 없이 각자의 핸드폰만 바라보았다. 인스타그램에는 눈썹을 치켜 올린 영운의 셀피가 올라와 있었다. "집주인이랑 각자 노는 중." 나는 거기에 '좋아요'나 누르며, 나와 영운의 잔에 와인을 더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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