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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모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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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kyoShin 2018. 8. 3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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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모텔



해운대 해수욕장 건너편, 서쪽으로 7 거리 골목 어귀에 근방 어떤 숙박업소와도 견줄 없는 모텔이 하나 있었다. 사면이 연분홍으로 도배된 건물 꼭대기에는 동화에서나 법한 유치찬란한 성의 첨탑이 멋이라곤 모른 당당히 솟아 있는데, 거기 붙은 이름은 '캐슬'이나 '샤인' 같이 순박한 아니고 '잉카'였다. 기이한 모텔을 처음과 마지막으로 목격한 때는 모두 2014년이다. 하지만 당시 얹혀살던, 친언니의 집이 이곳 바로 대각선에 있어 그해 반년 동안 잉카모텔을 지겹도록 봐왔다


내가 일상의 폭이던 건물에 적응치 못하고 마주칠 때마다 꼬박꼬박 경탄하던 무렵, 이곳을 결코 잊지 못하게 사건이 일어났다. 이른 잉카모텔 코앞 골목에서 낯선 남자와 마주친 것이다. 빳빳하게 세운 짧은 머리에 정장을 입은 사람이었다. 그는 잠깐 머뭇거리다 자신이 머무는 곳의 위치를 아느냐고 물었는데, 이름이 모르려야 모를 없는 잉카였다. "바로 여기"라고 일러주었더니 고맙고 반갑다며 인사를 건네왔다.


"이름이 뭐예요?"

"도쿄요."

"오사카 그리고 ?"

"."

"멋지네요. 저기, 방에 가서 지금 하는 테니스 경기 건데 같이 볼래요?"

" 테니스 별로 좋아하는데요."

"그래요? 그럼 맥주나 한잔 해요."

". , 그래요."


과도한 모험심을 품었던 4 전의 나는 저쪽 편의점 앞에 앉아 마시자는 거려니 하고 그를 따라나섰다. 맥주 코너 앞에 한참을 서서 내가 고른 "오사카 그리고 " 삿포로였고 그는 하이네켄을 골랐다. 재미없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 편의점을 나온 그와 내가 야외 테이블이 아닌 신비의 잉카모텔에 얼렁뚱땅 입성하고 있는 꼴은 재미있다기보다는 무서웠다. 우리는 로비 좌측의 비좁은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있었다. 그가 방문을 열자 붉은 , 청록색 바닥, 보라색 벨벳 소파가 한데 섞인 객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굉장한 광경이, 위험천만한 짓을 감행해 불안한 마음을 압도했다소파 앞에는 유리 상판이 깔린 커피 테이블과 작고 낡은 TV, 왼편 뒤에는 침대가 놓여 있었다. 수상한 테니스 팬은 아주 태연하게 나를 소파로 안내했다. 그리고 리모컨을 들어 TV 켜더니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가 보겠다던 테니스 경기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머쓱해진 우리는 맥주를 따서 마시기 시작했다. 지루한 마디가 오갔다. 캘리포니아 출신. 직업은 생명공학 기술자. 달에 일주일 정도 부산에 머무는 . 나는 속으로 이곳을 빠져나갈 타이밍만 재고 있었다.


"남자친구 있어요?"

"아니요."

"이렇게 예쁜데 남자친구가 없다니 이해가 되네요."


세상에. 이렇게 노골적이고 느끼한 플러팅이라니 이해하고 싶지 않네요. 때마침 휴대전화 배터리가 나갔고 나의 불안은 가중되었다. 이제 타이밍 같은 계산할 필요가 없었다. 갑자기 그가 소파에서 스르륵 일어나 벨트를 끌러 바지 속에 넣었던 셔츠를 끄집어낸 다음, 뒤쪽 침대에 엎드려 TV 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내게도 와서 누우라는 손바닥으로 옆자리를 가볍게 톡톡 쳤다. 선명한 공포가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나는 1초라도 빨리 이곳을 떠야 했다.


"저는 가봐야겠어요."

", 그래요? 가요."


잉카 신께 감사의 기도를. 그는 서둘러 현관을 나서는 나를 배웅하며 혹시 괜찮으면 번호를 교환하는 어떠냐고 물었다. 다음에 점심이나 저녁이나 같이하자고 했다. 아니 괜찮아요, 괜찮지 않은 거절을 하고 조막만  엘리베이터를 향해 종종걸음을 걸었다. 그날 집에 도착했을 언니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있었다면 태연히 굴었고, 없었다면 안도했을 것이다. 무모한 동생이 어느 초여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서른둘의 포동포동한 백인 남성과 잉카모텔에 들어선 사실은 영원히 비밀에 부칠 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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