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캐스퍼' 이후의 침대

Practice

by TokyoShin 2019. 1. 5. 20:01

본문




'캐스퍼' 이후의 침대

모두가 ‘잠’을 라이프스타일화(化)하기 시작했다




1. 캐스퍼의 침대


캐스퍼(Casper)는 뉴욕 기반의 매트리스 브랜드로, 2014년 CEO 필립 크림(Philip Krim)이 네 명의 공동창업자와 함께 설립했다. 


캐스퍼 설립 이전, 매트리스 유통은 대개 오프라인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소비자는 매장에서 제품을 보고, 영업사원의 세일즈 멘트를 들은 다음 구매를 결정하곤 했다. 캐스퍼는 이같은 유통 구조에서 기회를 보았다. 그들은 매트리스를 압축한 뒤 박스에 넣어 온라인으로만 판매했다. 매장도 영업사원도 필요하지 않은 덕분에, 캐스퍼는 대기업 제품의 3분의 1 가격에 매트리스를 판매했다. 더불어 온라인 구매 시 소비자가 감당할 리스크를 줄이는 ’100일 무료 사용’ 제도를 도입, 4년 만에 6000억원 매출을 달성했다.



캐스퍼 사업의 핵심은 ‘유통 구조의 혁신’이지만, 이들이 브랜드를 구축하는 방식 역시 귀감이 될 만하다. 캐스퍼는 다소 고루한 제품군인 매트리스에 ‘훌륭한 삶의 근간은 양질의 수면’이라는 유의미한 메시지를 엮어, 매트리스를 ‘필요한 물건’에서 ‘사고싶은 물건’으로 바꿔놓았다. 그들은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트위터 등의 채널을 통해 잠에 관한 이야기를 위트있게 전한다. 자신들을 ‘잠을 너무나 사랑하는 브랜드’, ‘잠을 위해 헌신하는 브랜드’로 인지시키는 동시에, ‘수면’이라는 일과를 흥미롭게 만든다. 


캐스퍼의 태그라인은 “세상이 잠드는 방식을 바꿉니다 Changing the way the world sleeps”라는 문장이다. 이들은 현재 하이테크를 도입한 매트리스는 물론 침대 프레임, 침구류와 반려견용 침대까지 출시하고 20여 개의 오프라인 매장도 열었다. ’수면 업계의 나이키’가 되고 싶다는 그들의 포부는 일찌감치 구체화되는 중이다.




2. 캐스퍼 이후의 침대

캐스퍼의 성공 이후, 국내 대기업 침대 브랜드의 메시지가 잇따라 바뀌었다. 캐스퍼의 사업 모델을 모방한 브랜드도 등장했다. 그 변화를 간략히 살펴본다.


1) 에이스침대
에이스침대(이하 ‘에이스’)는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그 시절 모두의 머릿속에 내리 꽂으며 30여년 간 국내 침대 시장 1위를 유지해왔다. 


에이스는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시대의 캐치프레이즈’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광고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했다. 고현정, 이정재, 수애, 이보영, 지성이라는 빅모델이 우르르 보증하고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 침대는 에이스다”라는 카피로 끝을 맺는 광고는 시장 점유율 1위만이 내세울 수 있는 당당함을 한껏 드러냈다.


그로부터 2년 뒤, 에이스는 불현듯 커뮤니케이션 방향을 틀었다. 시장 1위의 자긍심을 설파하는 데서 벗어나 ‘수면의 가치’를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8년 에이스 광고는 새로운 모델 박보검이 자전거를 타고 숲을 가로지른 뒤 깨끗한 침실에 머무는 장면을 보여준다. 선량하고 청량한 박보검의 첫 마디, “침대 하나 바꿨다고 당장 날아갈 듯이야 하겠어요?”는 2~4년 전 끗발 있는 배우들의 “자 봤으면 알 텐데!”라는 당당한 외침을 반박한다. 

‘좋은 잠이 쌓인다, 좋은 나를 만든다’. 에이스의 새로운 캐치프레이즈이다. 규모는 작지만 비슷한 메시지를 내세우는 ‘포스트 캐스퍼’ 브랜드가 늘어가는 시점에서, 에이스가 새로이 쌓고 있는 광고비는 좋은 성과를 만들 수 있을까? 한 발 늦은 메시지 전환으로 시대에 진부함을 더한 것은 아닐까?



2) 시몬스
시몬스는 에이스침대 대표의 동생이 소유한 회사다. 사실상 한가족인 두 회사는 태초부터 다른 길을 걸으며 ‘팀킬’을 피해왔다. 미국 시몬스의 판매법인인 한국 시몬스는 유구한 캐치프레이즈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과 프리미엄 전략으로 에이스에 버금가는 아성을 쌓아올렸다. 수입 판매 외 자체적인 제품 개발에 매진한 시몬스는 최근 몇 년 간 럭셔리한 디자인과 스타일링을 접목, 패셔너블한 이미지를 적극 부각해왔다.


시몬스는 2013년 이래 루즈벨트, 아이작 뉴턴 등 위인을 소재 삼아 ‘그들을 만든 것은 숙면의 힘이었다’는 메시지를 담은 광고 커뮤니케이션을 이어왔다. 이는 시몬스침대의 장점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는 미국 시몬스의 광고를 그대로 활용한 기존 광고와 완전히 다른 결이었다.


지난 2017년부터, 시몬스 광고는 또다시 완전히 달라졌다. 이들은 이듬해 같은 프레임의 광고를 선보이며 소비자 인식에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아메리칸 빈티지 풍으로 꾸며진 공간의 한 가운데에 침대가 있고, 거기에 션 오프리 Sean O’pry를 비롯한 세계적 톱 모델이 피곤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배경으로 ’혼네 Honne’의 ‘추운 밤을 따뜻하게 Warm on a Cold Night’가 흐른다. 침대 주변부로 모델을 피로하게 하는 장면들이 나열되다가, 모델이 침대 위로 풀썩 드러눕자 사라진다. 

시몬스는 편안한 수면의 중요성을, 패션의 어법을 빌려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동시대 유행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언어적인 메시지보다 비주얼과 감각에 무게를 둔다. 지난해에는 공장이 있는 경기도 이천에 복합문화공간 ‘시몬스 테라스’를 오픈하기도 했다. 밀레니얼 세대를 타깃으로, 수면이라는 카테고리를 매력있게 브랜딩하려는 캐스퍼와 궤를 같이 하는 움직임이다.



3) 슬로우
슬로우는 2016년 퍼시스그룹의 일룸이 런칭한 매트리스 브랜드다. ‘느리게, 제대로 만든’ 한편 ’깊고 느린 잠을 위해 만들었다’는 이들의 메시지는 브랜드 네임과 직결된다. 2018년 초, 예능 <효리네 민박2>으로 이름을 크게 알린 슬로우는 인터넷 매체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했다. ‘슬로우 토퍼 라이프’ 캠페인은 ‘합리적 가격’, ‘친환경’, ‘공간활용’ 등의 키워드와 인스타그램 속 실제 고객 사례를 접목해 사용성과 만족감을 보여준다.


슬로우의 브랜딩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들이 라이프스타일을 기준으로 더 세분화된 타깃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어로 보나 이미지로 보나 슬로우는 명백히 ’문화적 인디 감수성’을 공유하는 집단을 메인 타깃으로 삼는다. 자신들의 비전을 공유하는 큐레이션 프로젝트의 이름을 ‘슬로우 트라이브’로 명명한 것 역시 흥미롭다. 슬로우는 메인 타깃이 포진한 인스타그램 매체를 중심으로 긍정적 반향을 만들어보려 한 것 같다. 그러나 그러자면 슬로우의 인스타그램 담당자 만큼은, 느림의 가치를 지양하고 부지런해져야 할 것 같다.



기사 참조

40세 이하 리더 40인|‘꿈’을 파는 기업, 서울경제, 17.11.04.

Case Study 수면 산업 뒤흔든 ‘캐스퍼’ 온라인으로 매트리스 직판…4년 만에 6000억원 팔아, 이코노미조선, 18.06.25.

How Cult Mattress Company Casper Plans To Get You Into Bed, 패스트컴퍼니, 17.02.13.


'Practi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0년대를 지배한 레트로에 관하여  (0) 2019.01.20
글로벌 요리 대결 '파이널 테이블'  (0) 2019.01.06
2010년대 무해한 남성상의 계보  (0) 2018.12.23
잉카모텔  (0) 2018.08.30
아름다운 것  (0) 2018.02.23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