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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 회고 2010 ~ 2018 - 1

Thoughts

by TokyoShin 2018. 12. 24.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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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 회고 2010 ~ 2018

2010년대 시간의 장부: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문


“작가가 어떤 매체를 매개로 평생 함께 간다고 했을 때, 그는 시간의 장부를 쓴다고 생각해요. 뭘 얻었고, 뭘 잃었고, 어떻게 해야하는가를요.”


한달 전 한 강연에서 윤원화 시각문화 연구자로부터 ‘시간의 장부’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나는 그게 너무 마음에 들었다. 윤원화 연구자에게 시간의 장부는 책이라는 매체를 통한 기록이고, 사진가에게는 사진, 회화 작가에게는 그림이 되는 것일 테다.


나는 작가는 아니지만 그 표현을 빌려오기로 했다. 2010년대를 한 해 남긴 시점에서 지나온 2010년대를 회고하며 무엇을 얻고 잃었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직접 따져보고 싶었다. 과거는 대체로 돌이키고 싶지 않지만 들추어 부끄러움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 미래로 옮겨갈지도 모르는 싹을 도려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으며.




1. 위기의 20대


92년생인 내게 2010년대는 20대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28세를 목전에 둔 지금, 일평생 가장 대상화되고 찬미되는 이 세대를 향한 환상은 없지만 나 역시 20대에 진입할 때는 근거없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래서 스무살이 되던 2011년, 한국 경제 성장률이 세계 경제 성장률을 밑돌기 시작한 사실도 모른채 미래를 담보로 학자금을 대출받기 시작했다. 겁 없던 날의 부채는 고스란히 현재의 부담이 되었다.


나의 20대 초반은 그야말로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어쩌면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비롯, 자본주의적 위로가 만연한 사회에 대한 반발이었는지 모른다. 20대의 스타트를 국가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과 함께 끊어 놓고도 불안을 체감하지 못하고 대강 산 것은 내가 둔감했던 탓일까, 아니면 자본주의적 위로에 관심을 갖기도 전에 쌍방향 미디어를 통해 그를 향한 비판과 비난을 주야장천 접했기 때문일까.


나는 그렇게 한심하게 <무한도전>과 <마녀사냥>에 웃고 여성 커뮤니티 속 ‘자게(자유게시판)’을 훑으며 넘쳐나던 연애 팁 따위를 읽었다. 학점을 따는 일에도 크게 관심이 없어서 좋아하는 과목만 열심히 했다. 싫은 과목의 경우 최악의 예로, 수업 발표를 맡은 당일 출석하지 않은 적도 있다. 성적표엔 C+가 몇 개나 떴다.




2. GQ라는 기폭제


예정된 불운을 뒤로하고, 나의 2011년은 그럴싸한 취향을 만들기 시작한 해로 기억된다. 공강 시간 교내 도서관 연속간행물실에 들른 것을 계기로, 나는 몇 가지 디자인 잡지와 패션지를 읽고 마음에 드는 말과 이미지를 노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시기 내가 어떤 것보다 열렬히 좋아한 잡지는 <GQ 코리아(이하 GQ)>였다. 나는 그걸 대충 넘겨보지 않고 열독했다. 오죽하면 처음 펼친 날짜까지 기억한다.


2011년 11월 24일, 이충걸 전 편집장이 당시 12월호에 쓴 에디터스 레터(Editor’s Letter) 제목은 ‘할아버지 피터팬’이다. 나는 그의 냉소 섞인 유머와 지루하지 않은 비유에 과장을 좀 보태어 충격을 받았고 몇 년 동안 <GQ>를 읽었다. 매달 새로운 이슈를 꼬박꼬박 산 해도, 슬렁슬렁 끌리는 호만 읽은 해도 있었다. 그러는 새 이충걸이라는 이름 보다는 장우철이라는 이름이 내게 유효하게 되었다. 


강지영, 박태일, 박나나, 손기은, 정우영, 정우성, 유지성, 오충환, 이웅희… 내가 좋아한 <GQ>를 함께 만들던 수많은 이름들을 제치고 하필 장우철이었다. 나는 그가 붙잡는 계절과 말과 이미지와 피식거리게 하는 유머와 ‘너는 알든지 말든지 나는 하련다’ 하는 태도까지 좋아했다. 그리하여 그가 만든 페이지, 페이지 속 사진을 찍은 사람들, 그가 쓴 이름들에 모조리 관심을 가졌다. 모임 별, 황인찬, 권부문, 볼프강 틸먼스, 이강혁, 신도시, 우일요, 플라이스…


2010년대 내가 좋아했고, 좋아하는 대부분의 것이 <GQ>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여전히 주요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충걸과 장우철을 비롯한 이름들이 <GQ>를 떠나고, 내게도 특정 잡지를 인식과 취향의 준거에 두고싶지 않은 날이 찾아왔다. 나는 이 잡지를 시절의 기폭제로 오래도록 기억할 테지만, 현재와 미래의 영향력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3. 브랜드 환상의 소멸


광고학과에 재학하며 친하게 지내던 동기로 셋이 있는데 그들 모두 각각 다른 부전공을 찾아갔다. 나는 광고가 하고 싶어서 광고학과에 온 것도 아니면서 끝끝내 광고만을 전공한 사람으로 남았다. 


광고학은 공부하기에 모호한 학문이었다. 역사며 이론 보다는 시대 변화와 맞닿은 분야라, 사회 이슈를 머릿속에 재깍재깍 업데이트하고 통찰을 키우고 기획서 쓰는 감을 익히는 게 중요했다. 정해진 프레임과 짜맞추기식 논리에 흥미를 잃어갈 무렵, 브랜드학은 실체없는 환상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느낌적인 느낌’을 구체적인 언어와 인과 관계로 풀이하려 애쓰는 학문이었고, 인간의 욕망에 대해 알고 싶다며 다짜고짜 타과 교수에게 메일을 보내는 수준의 인문학 병을 앓던 나는 거기에 매력을 느껴버렸다. 당시 국내 유일 브랜드 잡지였던 유니타스 브랜드의 <브랜드 인문학>을 읽고 “눈물을 흘릴 뻔 했다”고 썼을 정도로. 대체로 명쾌하기 힘든 인문학이 자본주의 환상을 떠받치는 브랜드라는 개념과 합치된 콘텐츠를 본 순간 내면에서 뭔가 대단한 걸 발견한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끓어버린 것이다.


나는 광고니 마케팅이니 하는 진로를 고려하기도 전에 접고 브랜딩 에이전시를 향한 꿈을 꾸었다. 네이버 출신 인사들이 진두지휘하는 'JOH', '플러스엑스' 같은 에이전시는 꿈 같은 세계로만 다가왔다. 그런 데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알지도 못하면서.


2017년에 나는 결국 제 3의 브랜딩 에이전시에 입사하게 됐다. 브랜드 환상이 소멸되던 시기였지만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이란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늘 업무 내외적으로 곤란한 것들이 차 있고, 브랜딩 보다는 논하기 명쾌한 일을 하고 싶다는 일념을 품은 채 1년 반 만에 회사를 나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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