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결산 회고 2010 ~ 2018 - 3

Thoughts

by TokyoShin 2018. 12. 26. 21:44

본문




결산 회고 2010 ~ 2018

2010년대 시간의 장부: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6. 어떤 술


음주 가능 연령이 된 이후로 술을 좋아하지 않은 적이 없다. 술은 기분을 좋게 하니까. 나는 주종불문 술이라면 일단 관심을 가졌고, 생각보다 자주 마셨다.


가장 많은 관심을 쏟은 종류는 크래프트 맥주다. 2014년 가을 런던 여행에서 브루독 펍을 방문한 이후, 나는 크래프트 맥주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양조, 브랜드, 펍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때마침 한국에서도 크래프트 맥주가 각광받고 있었던 데다, 술과 매력적인 브랜딩이 한데 얽힌 분야라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2015년 초 나는 덴마크의 ‘미켈러’를 필두로 ‘옴니폴로’, ‘뽀할라’ 등 라벨 디자인이 좋은 맥주 브랜드를 여럿 찾고 기록했다. 


2015년과 2016년에 걸친 몇 달 동안은 두 개의 펍에서 일하기도 했다. 한 곳은 7개의 국내 양조장 맥주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었고, 다른 곳은 양조와 수입을 병행하는 ‘더부스’였다. 일하는 동안 다양한 맥주를 홀짝거리는 맛이 있었는데, 늦은 시각까지 일하는 건 만만찮았다.


그 뒤로 크래프트 맥주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술은 여전히 주종불문 좋아하지만, 술이라는 카테고리가 재밌어서지 음주를 즐겨서는 아니다. 최근에는 아예 음주를 멀리하려 한다. 취기는 공허한 감정을 부르고 이제는 그 상태가 너무 싫다. 앞으로 어떤 술이 궁금해질 지 모르겠지만, 음주를 대하는 자세가 같을 거라는 사실은 안다.




7. 어떤 음악


나는 세미 클래식, 뉴에이지를 좋아하다 웬 펑크에 치여 ‘악숭’을 하던 청소년이었다. 록 음악 정보를 교류하는 커뮤니티였다. 나는 그곳을 통해 여러 밴드를 접하며 2000년대 말 붐이 일기 시작한 록 페스티벌에 환상을 품었다. 


대학에 진학하고 수도권에 살게 되면서, 나는 록 페스티벌에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현실이 반가웠다. 그러나 가난한 스무살은 티켓값과 식비, 주류비, 교통비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나는 온갖 이벤트에 참여해 하루치 티켓을 얻어내고, 페스티벌에 가서 밤 늦게까지 놀다 딱딱한 바닥이나 락커에 기대거나 야외용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잠을 잤다.


2010년대의 음악 시장은 빠르게 바뀌었다. 전자음악과 힙합이 ‘대세’가 되어가는 동안 한때 우후죽순 생겨났던 록 페스티벌의 상당수가 아무도 모르게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해도 록이 아주 사장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음악 시장의 소비자 층이 그리 두텁지 않은 탓인지, 페스티벌은 장르 간 경계를 허무는 쪽으로 진화했다.


내 음악 취향도 마찬가지다. 힙합은 아직 좀 버겁지만 예전보다 다양한 장르를 듣게 됐다. 2016년 즈음부터 언더그라운드 클럽에도 가기 시작했고, 훵크와 디스코, 하우스를 좋아하게 됐다. 음악을 듣는 방식도 바뀌었다. 예전엔 아티스트나 곡명을 지정해서 듣는 게 일반적이었다면, 요즘엔 사운드클라우드나 유튜브에서 디제이들의 믹스셋을 듣는 일이 빈번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음악을 듣는 절대적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음악은 오래도록 더 많이 알고 싶은 분야다. 그런 김에, 내년엔 나도 스포티파이를 이용해 볼까 한다.


 


8. 시각 문화를 향한 관심


새로운 걸 보고싶은 욕구가 늘 있다. ‘본다’는 행위와 직결되기 때문인지, 디자인과 미술을 향한 관심을 끊을 수가 없다. 


브랜드 환상이 클 때는 디자인이 브랜딩의 정수와 다름없다는 생각에 관심을 가졌다. 디자인을 공부한 적 없던 나는, 어떤 디자인이 왜 새롭고 좋은지 이해하고 논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각종 브랜드 로고나 패키지 등을 두고 혼자 자잘한 고민도 해 보고, 업계 유명 인사 초청 강의나 토크에 쫓아가곤 했다. 한 해가 지나도록 같은 얘기를 하는 연사, 준비를 안 한 게 너무 티가 나는 연사를 겪으며 이런 자리에 대한 기대는 조금씩 줄었다.

 

2010년대 중후반 들어서는 각각 텍스트, 이미지 기반 플랫폼인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을 교차하며 몇몇 작가와 디자이너의 소식을 보고, 전시에 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디자인보다는 미술에 좀 더 관심을 쏟았다. 당시 트위터에서 미술 담론을 주도하던 '선생님들'의 견해에 뭣 모르고 동조하고, 그들이 이끄는 전시를 많이 봤다. 


선생님들의 견해가 더는 중요하지 않은 지금, 동시대 작가들이 직접 생산하는 힘에 주목한다. 2018년은 특히 좋았던 전시가 뚜렷하게 기억나는 해다. <Ryuichi Sakamoto: Life, Life>, <ORGD 2018>, <Caroline, Drift train>. 다만 이들 전시가 좋았던 이유에 타인의 견해가 끼어있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답하지 못한다. 전시를 접하면 좋고 싫다는 느낌과 별개로 거의 언제나 해석의 어려움과 마주하는데, 그러다보니 '선생님'이 아니더라도 타인의 해석에 가치 판단을 맡겨버릴 때가 많아서다.


어렵더라도 내 머리로 생각하고, 시각의 폭을 넓히는 일이 절실하다. 비단 시각 문화에 한한 일도 아닐 것이다.




'Though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산 회고 2010 ~ 2018 - 4  (0) 2018.12.29
결산 회고 2010 ~ 2018 - 2  (0) 2018.12.25
결산 회고 2010 ~ 2018 - 1  (0) 2018.12.24
메리고라운드  (0) 2018.11.26
지난한 계절  (0) 2018.06.18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