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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를 지배한 레트로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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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kyoShin 2019. 1. 2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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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를 지배한 레트로에 관하여

뉴트로라는 빈말과 유형(有形)의 레트로 열풍




2010년대 레트로 물결

2006년, 1980~1990년대 가요가 흐르는 술집 ‘밤과 음악 사이(밤사)’가 한남동에 문을 열었다. 수년 뒤 ‘밤사’는 20여 개 매장을 거느리며 연매출 200억 원을 훌쩍 넘기는 사업체로 성장했다. 


tvN의 메가 히트작 <응답하라> 시리즈를 만든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는 ‘밤사’에 갔다가 20대에게도 레트로 코드가 통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시리즈의 첫 작품 <응답하라 1997>은 2012년 여름에 방영되었다. 영화 <건축학개론>이 개봉한 몇 달 뒤다.


바로 전 해인 2011년에는 영화 <써니>가 개봉했다. 그해 음악 차트는 이 영화와 유사한 콘셉트의 곡인 티아라의 ‘롤리폴리’가 장악했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특별 기획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편을 방영한 해는 2014년이다.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가 나온 것도 그해였다.


2010년대 레트로의 물결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가장 먼저 들이닥쳤다. 과거의 것을 끌어오는 일은 ‘새로운 걸 내놓아야 한다’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강박과 위험을 상쇄했다. 몇 번의 성공을 담보로, 레트로 코드는 ‘안전’을 의미하게 되었다. 미디어는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가’ 싶을 정도로 지난 시절의 산물을 소환해 내었다. 그래도 레트로는 망하지 않았다. 죽고 죽어 돌아온 불사신처럼. 

 


‘뉴트로’가 된 레트로

레트로 코드가 끝 모르고 성공을 이어가니 이제는 그걸 ‘뉴트로(New-tro)’라 부른다. 레트로가 당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뉴트로는 ‘현대적 해석을 더한 레트로를 젊은 세대가 새롭게 즐기는 경향’이란다. 나는 이런 의미가 과연 유효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수년 전부터 쏟아진 레트로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세대 역시 20대였으며, 현 시점 유행하는 레트로에 더했다는 ‘현대적 해석’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레트로 문화의 향유 주체가 젊은 세대라고 해서, 레트로의 구현 방식이 새로워지지 않는다. 레트로는 언제나 ‘시절의 이미지’로 정립된 시간성을 도려내어, 당대의 시공간에 부착하는 방식으로 구현되어 왔다. 그러니까 레트로는 언제나 레트로일 뿐이고, 그 레트로가 지금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인 것 뿐이다.


다만 레트로 트렌드가 음악과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서 물건과 공간이라는 유형의 대상으로 옮겨간 점은 생각해 볼 만 하다. 



외식업계가 빠진 재현의 늪

지금 레트로가 가장 번성한 곳은 외식업계다. 요즘 ‘인싸들의 성지’라는 익선동 골목 양 옆에는 조악한 레트로 스타일 인테리어로 도배한 가게가 줄을 잇는다. 오랜, 혹은 방치된 역사를 품은 종로구 을지로의 저렴한 공간에 선지자가 둥지를 틀고 동네를 띄우면서 일어난 일이다.


을지로가 멋진 동네로 통하기 시작한 데는 ‘커피한약방’, ‘신도시’, ‘호텔 수선화’가 있었다. 2014~2015년 즈음 생긴 이 공간들은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를 주로 이용하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알음알음 알려졌다. 각기 방점은 다르지만, 모두 과거의 흔적을 그대로 남긴 모습을 한 공간이었다.


을지로를 비롯한 종로구 일대가 인기를 얻으면서, 시간이 밴 낡은 공간을 그대로 수용하는 가게가 늘어났다. 레트로가 일종의 ‘힙플 공식’으로 통하게 된 것이다. 한국의 외식업계는 전통적으로 당대 유행하는 콘셉트를 베끼고 베끼며 연명해왔다. 새하얀 벽면, 대리석 테이블, 몬스테라와 아레카 야자, 금색 포인트로 마무리한 인테리어가 즐비하던 때를 기억하는가. 겨우 몇 년 만에 우리 눈 앞에서 사라진, 시대의 풍경이다.


새로운 유행으로 거듭난 레트로 콘셉트는 레퍼런스에 대한 접근이 공식적으로 용이한 덕분에 특정 업체를 베낀다는 가책없이, 개화기부터 90년대까지 다양한 이미지로 구현되었다. 아마 업주들에게 레트로 열풍은 비용 절감의 효과를 누리면서 ‘힙플 공식’도 따를 수 있는 호재였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맥락없이 레트로 콘셉트만 차용한 가게들이 줄줄이 생겨났다. 대체 왜 목욕탕 간판을 내건 식당에서 양은 도시락에 담긴 파스타를 먹어야 하며, 양은 쟁반으로 만든 테이블 앞에 앉아 얼룩덜룩한 멜라민 사발에 담긴 커피를 마셔야 하는 걸까.



레트로, 오래도록 분명한 얼굴

애석하게도 이런 공간을 소비하는 세대는 지금도 레트로를 앞세운 무언가의 이모저모를 찍어 올리고 있다.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런 과업인 세대에게, 물건과 공간은 삶에 얽힌 가시적인 증거물로 기능한다. 


세대는 점점 가난해진다. 대단한 물건을 살 돈이 없으니, 공간과 자신을 등치시키는 경향이 강해진다. 계속해서 ‘힙플을 소비하는 나’를 인증한다. 지금 이 시대 가장 분명한 얼굴을 한 레트로는 이보다 더 분명한 얼굴을 한, 새롭고 돈 덜 드는 트렌드가 불어닥치기 전까지 인기를 끌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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