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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201

by TokyoShin 2019. 3. 10.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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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고 깨끗한 삶


클럽 갈 마음을 접고 집 오는 길 블루문 한 캔 사다가 치즈랑 살라미랑 올리브 넣고 로메인 샐러드 해서 먹었다. 그걸 찍어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피스틸 가고 싶었어..."라는 말과 함께. 얼마 뒤 같은 동네 사는 윤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네 집 앞이야, 나와."  나는 그가 고향 집에 간 줄로 알았기 때문에 당황한 가운데 일단은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꽤 취한 것 같았지만 집 앞에 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거기엔 정말로 윤이 있었다. 그는 잔뜩 취해서는 다짜고짜 근처에 세상 힙한 사람 다 모인 데가 있다며 나를 그리로 데려갔다. 학과 선배의 개인전 클로징 파티라고 했다. 윤은 거기서 거하게 마시다 취해서는 내 인스타 스토리를 보고 연락한 것이었다. 집에서 맥주 몇 모금 마시다 뜬금없이 모르는 사람이 가득한 곳으로 끌려가는 나는 여전히 당황하고 있었다.


"아니, 내가 지금 못다 마신 술을 두고 나왔어..."

"야, 못다 마신 술이 거기 다 있어. 와인, 보드카, 소주, 맥주 다 있어."


정말 그랬다. 전시장 지하의 커다란 테이블은 술과 잔과 배달음식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어쨌든 서로 아는 사람들이, 그 주위를 에워싸고 앉아있었다. 조명은 생각보다 밝았고, 공간은 그리 떠들썩하지도 않았다. 나는 맨정신으로 여기서 무엇을 해야할 지 알 수 없어서 윤이 남겼다는 샴페인을 들이킨 다음, 괜히 테이블 아래 쓰러진 오렌지 주스 병을 세우다 그냥 그걸 잔에 붓고 보드카를 섞어 마셨다. 그사이 윤은 취해서 하는 이런 저런 말을 내뱉고 있었다.


조금 뒤 우린 거길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이태원에 가고 있었다. 나는 택시를 타기 전까지 윤이 신날만큼 취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택시를 타고서야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택시가 공덕을 지날 때부터 윤은 잠들어있었다. 애초부터 모든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택시는 삼각지에 있었다. 결국 우리는 이태원에 도착하고 말았다. 클럽 가는 길 공기에 서린 찬 기운에 내 정신은 계속 맑았고, 술을 좀 깨야겠다는 윤의 정신은 흐려지기만 했다. 나는 자포자기의 심경으로 피스틸에 입장료를 냈다.


입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보고 싶었던 디제이가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잠깐 신나 하던 윤은 "힘들어 죽을 것 같아"라고 말하고 소파에 앉아 있더니 집에 가야겠다며 떠났다. 이 모든 일이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일어났다. 나는 그 시각 잠들지 않은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 하소연을 했고 그는 나를 놀렸다.


만 원 냈으니 두 시간 있다 와

인스타 라이브나 해봐

인싸되기~~

브이로그 제목

클럽에서 시간당 오천원


나는 진토닉이나 한 잔 사 마시고 음악을 듣다가 디제이가 바뀔 무렵 앱을 켜서 택시를 잡고 그곳을 떠났다. '좋았는데 그냥 그랬어.' 새벽 세 시 강변북로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내 정신은 흠 없이 깨끗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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