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A Fight Is Brewing - 2

Study/Interview

by TokyoShin 2015. 4. 4. 15:18

본문





예프는 그의 부인과 두 어린 아들과 함께 브루클린의 남쪽에 산다. 공동 설립자로서, 그가 관리하는 생소한 술을 파는 바 토스트(Torst, 'thirsty'라는 뜻) 근처다. 이른 3월의 오후에, 거기서 그를 만났다. 그는 좋은 뉴스를 전했다. "여기 올 때 E-1 비자를 받았어요 - 비즈니스 비자죠." 그가 말했다, "아티스트 비자인 O-1으로 바꿀 생각이었는데, 지난 주에 사전승인을 받았어요." 그가 미소지었다. "이제 전 아티스트라고 말할 수 있어요." 예프는 미켈보다 덮수룩한 머리를 갖고 있었고 훨씬 사교적이었다. 그는 이메일에 느낌표와 "녀석(dude)"같은 일상적인 단어를 마구 사용했다. 그의 뉴욕 친구들 중엔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수다를 떨다 만난 동년배 아빠, 뮤지션 줄리언 카사블랑카스(Julian Casablancas)도 있다. 토스트에서, 그는 스툴을 두드리며, 나를 앉도록 한 다음 물었다. "맥주 좀 마실래요?"

 바는 두꺼운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고, 벽은 북부 외양간에서 구한 나무로 뒤덮여 있었다.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노르웨이의 양조가들과 계약하고, 본사가 있는 코펜하겐 외에 샌프란시스코, 스톡홀름, 방콕에 바를 가지고 있는 미켈러는 이블 트윈보다 훨씬 글로벌하다. 반면 예프는 미국 시장에서도 특별히 뉴욕에 집중한다. 그의 맥주는 일레븐 매디슨 파크(Eleven Madison Park)와 폭폭(Pok Pok)을 포함한 도시 전역의 특별한 숍들과 레스토랑에서 맛 볼 수 있다. "집시 양조가로서, 전 제 양조장을 갖지 않아요, 그래서 제 공간에 맥주를 전시하지도 않죠," 예프가 말했다. 이런 점은 토스트와 함께 변해갔다. 고정된 대리석 판 위엔 21개의 맥주 탭이 있고, 그 중 세 번째가 이블 트윈 전용이다. 예프는 16,000달러를 들여 유속 충전기(flux capacitor)라는 드래프트 시스템을 설치했다. 이는 바텐더가 각각의 탄산과 온도를 정확히 조절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정교한 장치에도 불구하고, 예프는 말한다: "전 토스트가 맥주 애호가들만을 위한 매니악한 장소가 되는 걸 원치 않아요. 전 때로 나가 놀고 싶은데, 맥주를 들이키는 뚱뚱한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고 싶지만은 않거든요." 

 그는 상냥했지만, 비즈니스에 논할 무렵엔 몹시 호기로웠다. "전 뉴욕의 맥주 씬을 바꾸고 싶었어요." 그가 말했다. "뉴욕이 어떻게 그걸 해내는지 보여주고 싶었죠." 나는 2.7도 밖에 안 되는, 비키니라는 이블트윈 맥주를 주문했다. 내가 그 풍부한 맛에 놀람을 표출하자, 예프는 쌍둥이 형제의 성향을 겨냥했다. "저에겐 음용성이 가장 중요해요," 예프가 말했다. "전 다크 로드(Dark Lord)같은 건 안 만들어요." - 엄청나게 풍부한 쓰리 플로이드(Three Floyds) 스타우트. "시도하기 재밌는 맥주지만, 마시기 쉽진 않죠. 내가 형의 맥주를 무시하자는 건 아니지만, 그는 약간 과하게 쓰리 플로이즈 노선을 취해요. 그는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에 아주 심취해 있어요. 이런 블루베리 같은 걸 충동적으로 만들죠." - 벨지안-인스파이어드(Belgian-inspired) 에일 - "그리고 전 그게 싫어요. 역겨워요. 쿨-에이드(Kool-Aid) 맛이 난다고요."

 예프는 웃으면서 보조(Bozo)에 관한 얘길 들려줬다. 보조는 미켈러와 종종 어울리는 이들과 같은 양조가들의 익스트림한 맛 실험을 조롱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높은 알콜농도의 스타우트다. "우린 코코아, 초콜릿, 코코넛, 시나몬, 오크 칩, 칠리, 커피, 바닐라, 헤이즐넛, 케슈넛, 마시멜로우를 넣었어요," 예프가 말했다. "제가 마셔온 맥주는 아니었지만 굉장한 게 나왔고, 미친 점수를 받았죠."

 미켈과 예프는 코펜하겐 남쪽에서 20마일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인 니바(Niva)에서 자랐다. 그들의 아버지, 옌즈 보그 닐센(Jens Borg Nielsen)은 코펜하겐 베스터(Vestre) 교도소장이었다. 어머니는 덴마크 교도소에서 행정일과 보호 감찰을 했다. 형제가 8살 때 부모님은 이혼했고, 닐센은 다른 교도소에서 일하게 되어, 6시간 거리로 이사를 했고 두 아이를 더 가졌다.

 쌍둥이는 어머니의 성 비야르소(Bjergso)를 따랐고, "닐센"을 떼어버렸다. "두 아이를 키우기에 엄마는 힘들었고, 우린 돈도 많이 없었어요," 미켈이 회상했다, "그래서 전 아버지가 저희를 떠나 새 가족을 꾸리고, 제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사실이 싫었어요. 그렇지만 사람에게 화를 내는 데 시간을 소모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그는 최근 닐센과의 관계를 "아주 좋다"고 말했다. 반면, 보다 덜 낙관적이었던 예프는 이름에 남아있던 "보리"를 아내 성인 "자닛(Jarnit)"으로 바꿨다. 예프가 말하길, 부모님의 이혼은 "무지막지하게 힘들"었지만, 미켈과 서로 연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세상을 상대하는 일이었죠, 언제나 함께, 서로를 보호하면서요."  

 하지만 그들은 서로 몹시 경쟁적이었는데, 일찌감치 드러난 둘 사이의 역학은 때때로 우습기도 했다. "미켈과 전 2분도 채 안 된 간격으로 태어났어요," 예프가 내게 말했다. "그가 먼저 태어났지만, 어쩌면 제가 그럴 수도 있었죠." 그는 잘못된 상태로 누워있었고, 제왕절개를 통해 나올 수 있었어요. 만약 우리가 정상적으로 태어났다면, 제가 먼저 나왔을 거예요. 전 그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문제를 만들었다고 말하곤 하죠." 작은 아이들일 때, 쌍둥이는 누가 식기 세척기를 더 빨리 비울 수 있는지 경쟁했고, 이 시간을 건 내기는 사춘기까지 계속되었다. "11살 쯤이었을거에요, 우린 중거리 달리기 경주를 시작했고, 우린 정말 친해졌어요," 미켈이 말했다. 예프는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에겐 언제나 이기고 싶은 누군가가 있었어요." 1994년에, 쌍둥이는 국제 트랙-필드 행사인 아르후스 게임(Aarhus game)의 800미터 경주에 참가했다. "그건 우리 최고의 경주였어요. 그리고 우리 둘의 격차는, 100분의 1초였죠," 미켈이 말했다. "제가 2등이었고, 예프가 3등이었어요."

 미켈은 캔자스 주 대학교에 달리기 장학생으로 입학 해 화학과 물리학 코스를 밟았다. 그 곳에서 공부를 하면서 크래프트 맥주를 탐구했다. 그가 처음 맛 본 맥주는 오레곤(Oregon) 로그 에일(Rogue Ales)의 데드 가이(Dead Guy) 한 병이었다. "흥미롭게 여겼던 기억이 나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특별히 주목하진 않았어요. 다른 모든 이들이 마시는 쿠어스 라이트(Coors Light)로 돌아갔죠. 실버 불릿(Silver Bullets)을 좋아했거든요. 그 캔 기억하세요?" 1학년을 보내고, 달리기를 향한 열정은 시들해진 미켈은 코펜하겐으로 돌아갔다. 그는 그곳에서 1980년대 아메리칸 크래프트 맥주 붐의 영향이 번진 "맥주 혁명"이 진행 중인 것을 알았다. "우리는 칼스버그(Carlsberg)에 완전히 지배당해왔어요," 미켈이 말한다, "사람들은 이에 질려했죠." 그는 예프가 시작한 맥주 클럽에 가입했다. 그 곳에서 그들과 몇몇 친구들은 맥주를 마시고 그들이 아는 가장 흥미로운 맥주에 대해 논했다. 2005년, 예프는 올부티큰(Olbutikken)이라는 맥주 가게를 열었고, 이는 맥주 애호가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과학 교사로 일하던 미켈은 크리스찬 켈러(Kristian Keller)라는 오랜 달리기 동료와 함께 틈틈이 홈브루잉을 시작했다. 미켈의 부엌에서 미켈러를 만들어가던 와중에, 그들은 프렌치-프레스 커피를 넣은 스타우트, 비어 긱 브렉퍼스트(Beer Geek Breakfast)로 큰 히트를 쳤고, 예프는 이를 가게에 들여놓았다. 1년 쯤 후에, 켈러는 작가가 되고 싶어 일을 그만뒀고, 미켈은 홀로 회사를 맡았다.    

 올부티큰과 미켈러는 공생 관계였다. 가게는 미켈러가 유명한 맥주 도감에 오를 수 있게 도왔고 미켈러는 올부티큰의 전속 맥주가 되었다. 형제 사이에는 암묵적인 협정이 있었다: 한 명이 맥주 판매를 전담하고, 다른 한명이 맥주를 만드는 것. 그러나 2010년, 미켈이 올부티큰 근처에 플래그십 미켈러 바를 열었다. 보틀 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업은 "충돌을 겪기 시작했다"고 슌이 말했다. "그들이 멀어질 만한 협정이었죠." 미켈이 바를 연 지 얼마 안 되어, 예프는 이블 트윈을 시작했고, 상황은 악화되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당신 형제가 모든 사업 계획을 베낀다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보게스가 말했다. 슌은 그 무렵 쌍둥이와 있을 때를 떠올린다. "미켈이 '내 동생한테 전해줘,'라고 말하면, 예프는 답하곤 했어요, '형한테 전해줘,'" 슌이 말했다. "그들은 10피트 떨어져 있었지만, 서로 대화하길 거부했죠."

 예프는 첫 미켈러 바가 오픈했을 때, 불화가 일 것을 알아차렸다. "미켈러는 늘 제 하우스 브랜드였어요. 미켈이 바를 열자, 제가 말했죠, '내게 신경써주지 않을 거면, 나 혼자 할 거야.'" 하지만 예프는 2009년 쯤의 부동산 거래에서 일어난 불화 때야말로 갈등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미켈은 예프의 아파트를 구입하려다 거래를 취소했다. "저에게 이건 돈 문제가 아니었어요," 예프가 말했다. "그가 보여준 냉담함에 대한 거죠. 그는 '난 신경 안 써.'라는 태도였고, 전 큰 배신감을 느꼈어요. 이게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된 지점이에요. 우린 거의 몸싸움까지 갔죠. '거의'요. 이 일은 제게 깨우쳐줬어요. 단지 우리가 함께 자랐기 때문에, 단지 쌍둥이 형제기 때문이라는 걸..." 점점 잦아들던 예프의 목소리가 선언했다. "형제나 자매를 고를 순 없잖아요." (미켈은 예프의 이야기를 부정한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