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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201

by TokyoShin 2018. 10. 2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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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일


지난 월요일에 백수 생활을 끝냈다. 조금 급작스러웠으나 시작을 미룰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막상 출근하고보니 당장 맡을 일이 없어 매일 갖은 웹사이트를 횡단하고 있다. 그간 일기를 쓰지 못한 이유는 출근과 동시에 준비해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지난주 내내 퇴근 후 그 일에 열중했고, 일요일에 마무리 되었다. 일을 마치고는 택시를 타고 이태원에 갔다. 걸을 힘이 나지 않았다. 라이포스트에 가서 반미 세트를 먹고 웨이즈오브씽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 동네 가면 으레 하듯 집에 갈까 고민하며 녹사평역까지 걷다가 여기까지 온 김에 맥주나 한잔 할까 하여 그리로 갔다. 맥파이는 만석이었다. 지하는 오픈 직전이었는데 거기서 마시고 싶지 않았다. '여기까지 온 김에'가 '굳이 여기까지 와서'가 되었다. 아서라. '오늘은 또렷한 정신으로 있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역까지 걸었다. '배가 고픈가? 오늘은 저녁에도 맛있는 걸 먹고싶다', 하여 챠오에 갔다. 파스타를 먹으려고 했는데 자리에 앉으니 파스타가 먹고 싶지 않았다. 허니버터치킨이랑 레드와인 한 잔을 주문했다. 카페에서 읽으려던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를 꺼내 읽으며 천천히 먹고 마셨다. 마침 챕터가 짤막하게 나뉜 소설이었다. 글 한 챕터에 치킨 한 입, 와인 한 모금을 번갈아 오물거리는 게 퍽 재미있었다. 또렷하고 싶었던 정신이 흐려지는 게 치밀하게 느껴졌다. 온 긴장이 풀린 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무심코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가 열 시도 안 되어 깊은 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지난 일


지난 일기를 자주 읽는 편이다. 특히 딱 1년 전 일기를 찾는 대목에 해묵은 신선함이 있다. 오늘은 지난 기록을 뒤져 읽다 4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지금보다 글도 더 못 썼고, 생각도 더 유치했고, 금전적으로도 빈약한 시절이었다는 감상이 들었다. 과거를 반추하며 자주 하는 생각이긴 하지만, 물질적 증거를 몇 페이지 씩 눈 앞에 두고 있자니 생각이 훨씬 구체적으로 닥쳤다. 나는 당시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그리고 성기게나마 당시를 기록해온 내가 좀 좋아졌다.



티슈


필요할 때만 찾는 일회성 인간관계를 두고 티슈인맥이라 부른다. 근래 내겐 종종 티슈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때마다 친구도 뭣도 아닌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딱히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는 아니어서 속이 시원해지지는 않았지만 내키는대로 전화를 걸 사람이 있다는 것은 기이한 평온이었다. 애초에 이기적인 짓인 데다 통화로 별 소득이 없다는 것을 깊이 자각한 지금은 이걸 관두려 한다. 두고 보니 재사용하는 순간 그건 티슈가 아닌 것도 같고.


티슈라고 해서 다 티슈이고 싶을까. 누구 하나가 일방적으로 티슈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면 이 불균형은 어떻게 해소되나? 순간의 생각과 감정을 토로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그걸 잠자코 듣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티슈를 찾지 못해 못다한 말과 불편한 감정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일방적으로 티슈가 된 사람이 얼결에 받아든 상대의 말과 감정은 또 어디로 가는 걸까. 그 모든 게 시간을 따라 흔적도 없이 증발하는 거라면, 우리는 그 순간 뭘 그렇게 참지 못하고 털어버리고 싶은 걸까. 정말 슬픈 일이지? 이런 생각을 하는데 문자가 한 통 오고 그게 빌린도서 반납예정일 알림일 때. 슬픔을 도무지 반납할 수 없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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