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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201

by TokyoShin 2018. 10.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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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개인


어제 만난 사람은 일 년이 넘도록 만나지 않은 인물로, 전 직장을 세 달도 채 안 되는 기간 함께 다닌 동료였다. 그에게서 웬일로 지난 주에 연락이 와 보기로 한 것이었다. "머리 잘랐구나." 그가 나를 못 알아볼 뻔 했다며 말했다. 그의 머리 길이도 예전과 달리 어깨에 닿지 않았지만, "언니도 잘랐네요" 같은 말은 미처 떠오르지 않았다. "나도 머리 잘랐어. 좀 알아봐 줄래?" 나는 핀잔에도 이상하리만치 꿋꿋하게, 별 말을 안 했다. "머리 자르니까 친구들이 뭐라고 안 했어?" "뭐, 그냥 자르면 자르는 거죠." "보통 머리 자르면 막 뭐라고 하지 않아?" 그냥 그순간 모든 게 머리를 자르는 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말로 느껴졌. 괜한 심술인지 뭔지.


딱히 먹고 싶은 게 없던 우리는 돌고 돌아 중식당에 다. 사실 그가 이전에 몇 가지 음식을 나열했지만 별로 먹고 싶은 게 없었다. 대안을 찾으려 머리와 검색창을 굴려봐도 답이 안 섰다. 탕수육, 깐풍 새우, 백짬뽕이 나오는 2인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우리는 그걸 자리에 있던 모든 손님이 떠날 때까지 먹었다. 그를 만나면 전 직장에서 겪은 일을 일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기회가 오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새로이 의욕을 찾아가는 시기에 구질구질한 기억을 다시 꺼내고 있자면 상대의 반응이 어떻든 내 기분이 별로일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일을 궁금해하는 그를 뒤로 하고 지금 당장의 내 상황과 생각만을 이야기했다. 일이나 흥미에 관련하여 좀 더 자신의 기호를 알아가려고 하며, 이런저런 시도와 투자를 생각 중이라고 했다. 아직 이렇다 할 일은 하는 건 아니지만 공동 작업실에 다니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자 그는 작업실이 궁금하다며 지금 함께 가 보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에둘러 거절할 길을 찾아 헤맸다. 그와 식사를 마친 뒤 혼자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 하자고 할까 싶었지만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았다. 상대에게는 미안하지만 자신에게 좀 더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그와 지하철역에서 헤어진 다음 작업실에 가는 것. 이게 그 시점의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역으로 향하는데 그가 내게 서운하다고 했다. "너가 나랑 개인적인 것들은 공유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아. 회사 일도 얘기 안 해주고 작업실도 안 알려주고." 나는 그의 감정을 알 것 같아서 미안함과 당혹감을 동시에 느꼈다. "아이, 무슨 소리예요. 지금까지 다 개인적인 얘기였는데요." 태연한 척 그와 작별하고 작업실로 가는데 머리가 조금 멍했다. 저렇게 순간의 감정을 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속으로 묵히고 앓다 잊는 편인 나와는 너무 달라 생경하기까지 했다. 미안함과 당혹감은 작업실에도 따라 들어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계산한 밥값의 절반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오해마세요. 요즘 제가 좀 그래서 친구들도 뭐라그래요. 잘 자요." 책을 읽고, 일기를 썼다.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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