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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201

by TokyoShin 2018. 12. 5.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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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의 논리


회사에서 갑작스러운 일이 있었고 적잖이 당황했다. 속이 좀 상하기도 했다. 나는 어떤 일이 벌어지면 머릿속으로 그 원인에 대한 시나리오를 스무 개는 쓰는 타입이라 정작 상대는 신경도 안 쓰는데 혼자 끙끙 앓았다. 제3자에게 이 모든 일을 길게 토로하고서야 시나리오를 전부 지웠다. 전화를 끊고 책상 앞에 앉아 생각을 했다. 봐봐. 저번에 그랬잖아. '내가 너라면'으로 운을 떼는 순간 오해만 깊어진다고. 그건 역지사지도 뭣도 아니라고. 사람과 상황에 대한 단서를 조합해야지. 이런 상황에, 이런 사람. 그럼 그럴 수 있는 거지. 그렇지. 마음은 한결 편했는데 또 편도가 부은 건지 목이 아팠다. 내일도 아프면 약이나 한 알 더 먹으면 되지. 그렇지.



괴로움의 논리


"돈 있는 집에서 나서 공부나 계속하고 돈 안 되는 예술이나 하면 적성에 맞았을 거 같은데." 버릇을 못 버리고 자조 섞인 농담을 하자 한 친구가 받아쳤다. "그러네, 딱 너네." 예기치 못한 강도의 동조였다. "혼자 이상한 실험이나 하고 앉았을 때가 행복했는데. 요즘 너무 괴로워." 나는 두 술을 더 떴다. 다른 친구가 진지하게 말했다. "너무 괴로워하지마.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나는 가짜 식은땀을 흘렸다.


하고 싶은 공부는 많지만 학위를 딸 정도로 깊게 파고 싶은 분야는 없다. "돈 안 되는 예술이나"라고 폄하했지만 내가 무슨 깜냥으로 예술을 할 수 있겠냐고 생각한다. 돈 많은 환경이 적성에 맞을 것 같다는 가정 만큼은 온전한 사실이지만 누군들 안 그런가. 사실 자조를 빼면 하나마나 한 말이었는데 친구가 대번에 "딱 너네"라고 한 게, 가뜩이나 아픈 목에 콱 걸려버렸다. 오래 된 과거에 지향하기도 했던, 모르는 새 내가 만든 이미지. 이게 여전히 유효하다니.


예전에 한 번 쯤, 나는 이런 이미지가 오해를 만들 수도 있겠고 생각했다.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어쩐지 논리보다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감성을 다루기 좋아할 거 같은 사람이었다. 틀린 생각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래도 좀 억울했다. '아닌데. 굳이 따지자면 업무에서 논리적인 파트를 더 좋아하는 거 같은. 제가 논리를 그렇게 못 만드나요?' 


아니, 그러니까 애초에 저런 소리는 왜 해가지고 이 야밤에 논리도 아닌 고민을 만들고 있는지 참 스스로를 괴롭게 한다는 점에서 옛날 돈 못 버는 예술가 스테레오 타입에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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