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없이 자라는 머리를 일년에 네 번 자릅니다
머리를 자르려고 토요일 저녁 헤어숍 방문 예약을 한 건 목요일이었다. 작년 여름 허리까지 기르던 머리를 턱까지 자른 이후로, 머리 길이가 어깨를 향하는 걸 보면 거슬려서 견딜 수가 없다. 웃긴 건 머리를 자르기로 한 날만큼은 그 정도 길이도 썩 괜찮아 보인다. 오늘도 머리를 말리고 거울을 보며 '좀 더 있을 걸 그랬나' 생각을 했다. 자르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내가 헤어숍에 가는 이유는 오로지 커트를 하기 위해서다. 펌에는 늘 관심이 없고 염색은 집에서 하는 게 속 편하다. 단발을 유지하면서 일 년에 기껏해야 한 번 정도나 가던 헤어숍에 네 번을 간다. 취하지 않으면 도통 스몰토크 나누는 법을 모르는, 뻣뻣한 성격의 나는 이런 1:1 대면 서비스에 여태 적응하지 못한다. 가게에 들어서서 이름을 말하고 옷과 가방을 맡기고 '샴푸'를 하기까지 대기하다 꼼짝없이 누워서 초점없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머리를 감고 커다란 거울 앞에 앉혀져 잘려나가는 머리카락과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는 일련의 일이 시종일관 어색하다. 이런 나와 완벽하게 대비되는, 노련한 디자이너는 나를 찰떡같이 기억하고 "저번처럼 잘라드려요?", 방긋 묻는다. "머리가 빨리 기는 거 같아요. 되게 많이 자랐어요." 자연스레 건네는 얘기에 "그런 것 같아요." 작은 목소리로 삐쩍 마른 답을 하는 나는 아, 정말이지 재미라곤 없는 사람.
어색한 30분을 보내고 문 앞까지 배웅하는 디자이너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속이 시원한 이유가 머리를 잘라낸 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지지난 토요일 디제이에게 물은 곡을 오늘에야 찾아 들었습니다
QUAI 21 - MUSIC MAN
MR FINGERS - WHAT ABOUT THIS LOVE
이날 둘이서 와인 두 병 마셨고 더 맨정신이었던 때 물어본 게 더 좋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와인 두 병 마신 날에 이 제목에 대해 스치듯 이야기하며 박수를 쳤다. 박수까지 칠 일은 아니었는데 취해서 그랬다. 박준 시집이나 산문집 제대로 읽은 적 없지만 늘 제목은 잘 짓는다고 생각했다. 모두 편집자 김민정 시인이 고른 것이라 들었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본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듯 앞으로도 박준 시인의 글을 읽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겠으나 제목만큼은 읽게 되지 않을런지.